장비 다루기
기어 슬링 VS 기어 루프
한때 아주 중요한 등반 장비였지만 지금은 멸종의 길을 걷고 있는 기어 슬링

2019년 8월 28일

기어 슬링이 트라이 캠과 같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요? 고압축으로 제작돼 매끄럽고 윤이 나는 하네스의 기어 루프가 정말 슬링보다 성능이 뛰어난 것일까요? 아니면 현대 클라이밍에서 두 가지 장비의 쓰임새가 갈라지고 있는 것일까요? 이번 장비 다루기에서는 한때 아주 중요한 등반 장비였지만 지금은 멸종의 길을 걷고 있는 기어 슬링에 대해 알아보고, 두 가지 장비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지… 바로 시작합니다!
사진: 앤디 얼 / 클라이머: 빅 월 폴 / 장소: 유타 남부
지금의 친절하고 상냥한 블랙다이아몬드 선수 매니저 타일러 윌컷은 소싯적 더트 백(dirtbag)이었습니다. 이야기는 그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바위의 초등만을 꿈꾸는 큰 눈망울의 젊은 윌컷은 룸메이트인 지미 웹과 소파에 앉아 그의 스폰서였던 블랙다이아몬드에 처음으로 “선수다운” 이메일을 쓰고 있었습니다.

새벽 1시 45분에 쓰인 메일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콜린 포윅씨에게, 새 제품에 대한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요."

윌컷의 젊은 열정과 혈기를 비난할 수는 없지만, 졸린 눈을 비비고 이메일을 열어봤을 클라이밍 카테고리 디렉터 콜린 포윅을 상상해보니 웃음이 나네요. 하지만 이메일의 내용은 천재적이었습니다.

그의 제안은 루프가 달린 기어 슬링을 만들 때 루프의 색깔을 블랙다이아몬드 캐멀롯의 슬링과 로브의 색깔과 맞추자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간단하지 않나요? 금색 장비는 금색 루프에, 파란색 장비는 파란 루프에, 장비를 색깔에 따라 효율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천재적이었던 건 바로 그가 제안한 장비의 이름이었는데요.

장비의 이름은 윌컷(Willcutt)이에요 …
시간을 대폭 줄여줄 것이기 때문이죠!(It WILL CUT your time in half) 창의적이지 않나요?
사진: 앤디 얼
물론 창의적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윌컷 기어 슬링은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기어 슬링과 그 용도는 트라이 캠과 같은 운명을 걷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형형색색의 기어 슬링이 걸려있는 장비 선반이나 벽장을 보신 적이 있을 텐데요. 요즘 슬링은 등반에서 쓰이기보다는 클라이머들이 장비를 보관할 때 걸어두는 용도로 쓰이는 것이 거의 전부인 추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콜린 포윅도 선뜻 윌컷을 개발할 수 없었던 것이죠. 충분한 수요가 없었으니깐요.

그렇다면 기어 슬링의 쇠퇴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일까요? 질문에 대한 답을 위해 이번 장비 다루기에서는 과연 기어 슬링이 벽에 장비를 걸어두는 용도 이외에도 현대 클라이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지 알아보았습니다.

이미 매끈하고 윤기나는 하네스의 기어 루프가 슬링을 완벽하게 대체해버린 것인지, 장비 각각의 장단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더 중요하게 실제 클라이머들이 무엇을 선호하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죠.

사진: 프란체스코 르보 / 클라이머: 밥시 장걸 / 장소: 매직 머쉬룸 (Magic Mushroom (VI 5.14a), Yosemite)

루프파
주제에 대한 답을 위해 먼저 블랙다이아몬드 소속 선수들 중에 정상급 트래드 클라이머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봤습니다. 먼저 만나볼 선수는 네셔널 지오그래피 2019 올해의 탐험가, 엘캡의 매직 머쉬룸(5.14)의 두 번째 완등자, 오스트리아 출신의 밥시 장걸 선수입니다.

이외에도 밥시 선수는 Prinzip Hoffnung (5.14R)의 세 번째 완등, 엘캡의 프리 루트인 El Nino (5.13c), Zodiac (5.13d), 그리고 Pre Muir (5.13c)와 같은 루트들을 섭렵한 강자입니다. 밥시 선수에게 물었습니다.

 기어 슬링 vs 하네스의 기어 루프?
“저는 기어 루프를 선호하는 편인데, 장비가 걸리적거리지 않고 하네스 옆에 있기 때문에 좋아요.” 밥시 선수가 말합니다. “슬링을 쓰게 되면 장비가 가슴 앞에 놓여서 등반에 방해가 되거든요.”

가슴 근처에 무언가 걸리적거리는 게 싫다고 말하면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프린집 호프농(Prinzip Hoffnung)을 등반할 때 슬링을 쓰긴 했었어요. 오스트리아에 있는 길고 어려운 트래드 루트인데 순서대로 알맞게 정돈된 장비의 사용이 아주 중요한 루트였습니다. 슬링을 사용하면 장비를 사용의 순서에 맞게 정돈할 수 있고 장비를 뽑을 때 양손 모두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아요.

프린집 호프농에서는 작은 너트를 확보하는 게 굉장히 까다로웠는데, 마이크로 너트가 전부 비슷하게 생겨서 하네스에 섞이면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50m 길이의 긴 루트였기 때문에 장비도 많이 필요했고, 때문에 슬링이 더 좋았던 경우였어요.” “하지만 이건 특별한 경우였고 거의 항상 기어 루프를 사용하는 편이에요.”라며 그녀가 말합니다. “동작에 방해 없이 자유로운 게 항상 좋아요. 앞에 걸리적거리는 게 없으면 스타일도 더 좋아지고요!” 맞는 말입니다.

정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밥시 선수는 기어 루프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어릴 적부터 트래드 등반에 입문한 영국 출신의 트래드 슈퍼스타 헤이즐 핀드레이 선수는 어떨까요?
“하네스가 있기 때문에 기어 슬링은 필요 없어요.”

헤이즐 선수가 말합니다. 그녀의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기어슬링이 흔들거리면서 걸리적거리는 게 싫고, 한쪽 어깨에 치중되게 짊어져야 해서 좋아하지 않아요.”
사진: 앤디 얼 / 클라이머: 헤이즐 핀들레이 / 장소: 유타 남부
그럼 헤이즐 선수가 생각하는 슬링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슬링이 더 많은 장비를 챙길 수 있고,” 헤이즐 선수가 말합니다. “빌레이를 파트너와 바꿀 때 벗기도 수월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빠르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때문에 하네스의 기어 루프를 사용하면 장비에 덜 의존할 수 있게 돼요!” 그녀는 또한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물론 정말 옛날 사람처럼 보이고 싶으면 슬링을 써야죠. 게다가 슬링은 훨씬 지저분한 룩(look)을 연출한다고요.”

 역시 헤이즐 선수다운 답변이었네요. 자, 헤이즐 선수의 의견도 들어봤겠다. 기어 슬링을 활발히 사용했던 세대의 클라이머들과 이야기를 나눠볼 차례인 것 같네요.
슬링 파

여러분이 추운 겨울날 아침에 커피를 내리는 동안에 WI 5 아이스 루트 세 개 피치를 등반해버리는 베테랑 알파인 등산가이자 산악 전문가인 더글러스 샤봇 선수를 만나보았습니다. 우리의 예상대로 그는 뼛속부터 슬링 파였습니다. “트래드는 슬링이죠. 저와 같은 사람은 소수일 것 같지만요.” 그가 말합니다. “기어 루프만 사용했던 적이 있는데,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가 개인적으로 슬링을 선호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크게 두 가지입니다.

  1. 자세를 불문하고 언제든지 모든 장비를 꺼내 쓸 수가 있어요. 어느 손이던지 상관없죠. 저는 유연하지가 않아서 오른손이 크랙에 높이 꽂혀 있을 때는 오른쪽 두 번째 기어 루프에 있는 장비는 사용하지 못하게 되거든요.
  2. 슬링이 가동 범위가 더 커요. 매고 있는 어깨를 언제든지 바꿀 수 있고, 침니나 넒은 크랙에서는 몸 앞으로 오게 할 수도 있죠.
사진: 앤디 얼 / 클라이머: 헤이즐 핀들레이 / 장소: 유타 남부

아하! 바로 이것이 큰 차이군요. 넒은 크랙, 침니, 양손 같은 미묘하지만 중요한 단어들에 집중해보세요. 더글러스의 등반 스타일이 그가 슬링에 집착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는듯합니다. 그는 또한 멀티 피치 루트에서 선등을 교환할 때 슬링이 필수적이라고 말합니다.“하네스로 선등자를 교체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요.”

헤이즐 선수의 “지저분한 룩”이라는 말에 더글러스는 다음과 같이 반박합니다

“슬링도 장비를 잘 정돈하면 깔끔해 보일 수 있어요. 하네스야말로 지저분하죠. 빠르고 깔끔하고 파트너와 교체도 쉽고, 모든 상황에 다재다능한 게 슬링이라고요.”

그렇군요.

더글러스의 소개로 우리는 추가로 몇 명의 알파니스트들을 만나 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스포츠클라이밍과 현대 락 클라이밍의 발전 속에서 알파인이라고 불리는 고통의 예술이 슬링과 함께 멸종하고 있는 건지 그들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영국의 알파니스트 매튜 헬리커가 말합니다

“여름에는 하네스를 쓰고 겨울에는 슬링을 써요. 일반적으로 겨울에는 와이어랑 퀵드로, 또는 더 긴 장비들이나 헥스 같은 장비들을 슬링에 챙기는데, 장비의 탈부착이 빠르기 때문이죠. 장비를 다시 슬링에 걸어야 할 때도 훨씬 빠르기 때문에 펌핑이 왔을 때와 같은 까다로운 상황에서 원하는 장비를 딱딱 골라서 쓸 수 있어요.”

또 다른 산악 전문가 존 브레이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알파인 등반에서는 옷도 더 두껍고 장비도 훨씬 많이 챙겨야 하기 때문에 슬링이 좋아요. 저의 기본적인 장비 세팅은 스타퍼와 캠을 슬링에 걸고 퀵드로를 하네스에 거는 것입니다.”

하지만 브레이시도 알파인 등반이 아닌 일반적인 락 클라이밍에서는 기어 루프를 사용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장비가 걸리적거리지 않고 접근이 쉽다는 이유로 말이죠.

그렇다면 정말 기어 슬링의 멸종이 넓은 크랙, 침니, 혹은 설산 등반 같은 옛 세대들의 등반의 사그라드는 인기와 비례하는 것일까요?


사진: 앤디 얼 / 클라이머: 헤이즐 핀들레이 / 장소: 유타 남부
결론

이 현상에 대해 누구보다도 연구를 많이 한 블랙다이아몬드 클라이밍 카테고리 디렉터 콜린 포윅을 찾아갔습니다.
클라이밍 장비의 실패와 성공을 현장에서 가깝게 목격한 콜린 포윅은 기어 슬링의 감퇴에 대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제가 처음 등반을 시작했을 때는 모두가 슬링만을 쓰던 시절이었어요.” 그가 말합니다. “90년대 초반에 멀티 피치 트래드 클라이밍이 그랬죠.”
“그런데 2000년대 초반에 솔트레이크시티로 이사 와서 보니깐 어느 순간 모두들 하네스를 쓰고 있더라고요.”

콜린 포윅에 따르면 슬링 감퇴의 첫 번째 이유는 단순한 유행의 흐름이라고 합니다. 헤이즐 선수가 말했듯이 하네스가 “신세대” 장비인 것이죠. 이외에 다른 이유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다른 장비들이 경량화 됨에 따라 하네스에 더 많은 장비를 챙길 수 있게 되었고, 오버행 구간의 등반을 할 때 출렁이는 슬링은 등반자를 아래로 당기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물론 옛날보다 하네스의 기어 루프가 많은 발전을 했다는 사실 또한 중요한 요소입니다.

“블랙다이아몬드 하네스를 예로 들자면, 현재 고압축으로 제작된 블다의 기어 루프는 장비를 많이 걸어도 루프가 V 모양으로 구부러지지가 않습니다. 옛날 하네스는 구부러졌죠.”

그렇다면 콜린 포윅도 슬링에서 루프로 갈아탄 걸까요?

“저는 정리 정돈에 강박증이 있기 때문에 어떤 장비는 오른쪽 앞쪽 루프에 있어야 하고, 어떤 장비는 뒤에, 어떤 장비는 왼쪽에, 장비마다 자리가 정해져 있어야만 해요. 네, 슬링에서 루프로 옮겨왔죠.”

그러나 그도 마찬가지로 기어 슬링을 꼭 써야만 할 때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특히나 긴 멀티 피치 루트를 등반할 때 말이죠. “슬링이 선등자를 교체할 때 정말 편해요.” 그가 말합니다.

그는 물론 위에 의견을 냈던 알파니스트들 또한 일리가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입니다. “습관이 참 무서운 거니깐요.”

자, 이제 마지막 질문만이 남았습니다. 콜린 포윅이 자칭 정리 정돈 강박증이라면, 왜 윌컷이 제안한 제품을 개발하지 않은 것이죠? 슬링의 미래에 비전을 보여준 아이디어였는데 말이죠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 보도록 하죠.” 그가 말합니다. “저는 슬링도 항상 칸이 나누어진 기어 슬링을 사용했었어요. 단일 슬링은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죠. 그래서 그걸 그대로 하네스로 옮겨온 거라고요.”

“그런데 윌컷은…” 그가 계속해서 말합니다. “참 흥미로운 제안이었어요. 등반할 때 가지고 올라가는 기어 슬링이라기보다는, 밑에서 장비를 정돈할 때 쓰는 기어 슬링 같았죠.”

“하지만 문제는 이거예요.” 그가 설명합니다.

“첫째, 지난 수년간 기어 슬링의 매출을 살펴보면 꾸준한 감소를 보이고 있어요. 말했듯이 더 이상 사람들이 예전만큼 기어 슬링을 쓰고 있지 않다는 뜻이죠.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제품의 수요가 있을지 확신이 안 서는 겁니다. 게다가 윌컷은 가격이 높게 측정될 수밖에 없는데, 일반적인 슬링보다 공학적으로 복잡하기 때문이죠. 둘째, 이 제품을 사서까지 등반전에 장비를 정돈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몇몇은 등반할 때도 쓰겠지만, 매우 소수겠죠.”

“그래서 윌컷을 만들지 않은 거예요… 아직은요.”

이에 타일러 윌컷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직은’이라는 말은 그래도 여지가 있다는 거네요?”

– 블랙다이아몬드 컨텐츠 매니저 크리스 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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