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클라이밍 선수이자 BD 제품 개발자인 세네이다 비엔다라(Seneida Biendarra)가 지난 2023년 솔트레이크 시티 패러클라이밍 월드컵의 금메달을 목표로 걸었던 길을 조명합니다.
세네이다는 시력이 악화될 무렵 클라이밍을 통해 위안을 발견합니다. 그녀는 클라이머들과 만나며 비로소 마음을 열 수 있었고 자신의 장애를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웠죠. 세계적인 월드컵 무대에서 자신의 여정을 나아가는 세네이다의 이야기를 자넬 드랜스필드와 레이첼 로스가 기록했습니다.
제 하루의 기준은 암벽에 다가가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바위와 나무, 트레일을 오르는 일은 저에게는 단순한 도전 그 이상이에요. 왜냐하면 그 날의 제 시각적 컨디션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거든요. 이렇듯 저는 불안정한 작은 시야에 의지해 한 걸음 한 걸음을 신중히 내딛습니다. 시야를 확보하고자 동공을 이리저리 움직여보지만 (시야각이 약 5도 정도인) 작은 잠망경을 통해 세상의 정보를 조금 수집할 뿐이죠. 좋은 날에는 내가 보는 것이 분명하지만, 때때로 깜박이는 점들이나 정적에 가려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트레일의 너비를 확인하고 가파른 지형에서 발 디딜 곳을 찾는 데는 충분히 유용합니다. 때로는 시신경이 붓고 시야가 좁아지며 눈앞이 어두워집니다. 이런 날은 경치를 감상할 여유가 없기 때문에 다음 스텝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죠. 탐색하고 딛으며 균형을 잡고 다시 이를 반복합니다.
이 과정이 좌절감을 겪는 것처럼 보이는 게 맞아요. 하이킹이 수월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정상시력을 지녔던 과거가 그립습니다. 허나 등반은 늘 어려웠기 때문에 조금 다릅니다. 제가 위스콘신의 얼음 기둥 아래에서 처음 매듭을 묶게 된 건 시력이 악화된 후의 일입니다. 길을 건너는 것조차 두렵던 시기에, 빙벽 등반은 마치 날아오르는 듯한 기분이었죠. 겨울이 끝날 무렵 저는 암벽 등반을 시작했습니다. 제 자신이 (남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 홀드를 찾을 때까지 지구력과 인내심을 갖는다면 다른 친구들만큼 열심히 등반할 수 있을 겁니다. 등반은 (제가)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움직이는 환경을 조성했고, 내면의 두려움은 등반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기여했습니다. 종종 가파른 자갈길을 오르는 게 등반보다 더 어렵다고 느꼈습니다. 수직으로 우뚝 선 암벽에서는 (제 움직임에 대한) 통제력을 되찾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죠. 시각장애는 제 자신을 너무 겸손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등반을 통해 능력을 힘차게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났고 자신감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늘 어려움을 겪어왔습니다. 시각에 장애가 있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해 더 큰 노력이 필요합니다. 장애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이분법적이다 보니, 시각장애를 숨기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팡이나 안내견 같은 시각 장애의 명백한 표식이 없는데도 시각 장애인이라고 밝히는 게 종종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거든요. 저는 예나 지금이나 클라이머 겸 엔지니어입니다. 장애진단을 받기 전에 쌓인 자의식 때문일수도 있지만, 제가 겪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주변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짐을 지우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한동안 저와 같은 클라이머를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어요. 만나고 싶지만 방법을 몰랐죠. 저를 레드 리버 협곡의 어댑티브 클라이머 페스티벌(Adaptive Climber's Festival. ACF)에 참석하도록 독려한 멘토가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저를 장애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스포츠'라는 렌즈로, 다시 한번 저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ACF에서 저와 같이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만났는데요, 각자 자신이 지닌 장애로 인해 상실감과 고립감을 느끼는 사람들이었죠. 이 커뮤니티에서 저는 숨겨왔던 것을 밝히는 자유를 만끽했습니다. 그리고 진솔한 대화를 통해 제가 지난 8년간 쌓은 벽을 허물었고, 마침내 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언어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