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둑한 새벽, 서로 약속한 시각에 맞춰 하루를 여는 3인방의 북한산 트레일을 최홍석 영상감독이 조명했습니다.
잘 보존된 문화유적과 자연 생태계, 크고 작은 바위들과 높이 우뚝 솟은 봉우리들. 무엇보다도 다양한 난이도의 트레일이 갖춰진 곳으로, 이곳을 찾은 이들에게 짙은 인상으로 기억되는 곳입니다. 해마다 약 500여만 명이 찾는 북한산 초입에 블랙다이아몬드 플래그십스토어가 위치해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산성점으로 명명했는데, 오늘 소개하는 트레일러너 김의철, 장홍선, 구교정에게 이곳은 곧 아지트입니다.
이들은 이른 새벽에 기상해 북한산 트레일을 달리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우리는 그 세 남자의 뒤를 좇아 영상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트레일러닝과 북한산이 그들의 일상에 준 선물을 조명했습니다.
Black Diamond Originals: BD Korea
Film: Hongseok Choi
볼더링, 암벽등반, 백패킹 등 여러 장르를 즐겨왔습니다. 그 중 오늘날 가장 집중하는 것은 트레일러닝입니다. 저는 그 누구보다도 일찍 하루를 시작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곤히 잠들어 있을 새벽 3시, 어둑한 새벽에 집을 나섭니다. 지난 2019년 가을 무렵 트레일러닝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실내 암장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지인이 트레일러닝 복장에 해드램프를 착용한 채 암장에 등장한 모습을 본 후 트레일러닝에 큰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지인을 따라 산길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트레일러닝은 산을 달리며 자연 그대로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큰 장점입니다. 스릴도 적당히 경험할 수 있고, 달리다 지치면 템포를 낮춰 걸어도 된다는 점도 매력적이었죠. 한편 스릴이 있는 만큼, 트레일러닝에 집중할수록 그 난이도는 상당합니다. 제주도 돈내코 코스를 달리다가 발목이 부러진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순간만 제외한다면, 저는 트레일러닝에 입문한 후 무엇인가 후회하거나 혹은 실망했던 순간이 없었습니다. 그저 대자연 속으로 더 깊숙하게 탐험을 이어가는데 몰입했습니다.
산길을 따라 달리면 마치 터질 것만 같은 감각이 허벅지를 타고 심장으로 전해집니다. 힘들 법도 하지만 달리기를 멈추지 않는 이유는 이 순간이 정말 좋기 때문이죠. 이른 새벽에 시작하는 훈련을 꾸준히 반복하고, 경기 중 고된 코스를 달리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도, 트레일러닝이 선사하는 이 순수한 감각에 크게 매료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만약 여러분들 중 아직 산길을 달려보지 않았다면, 꼭 한 번 트레일러닝을 경험해보시라고 권장합니다.
저는 지난 2018년도에 시작해 오늘날까지 여러 트레일러닝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2023 서울100K 100km 부문 2위를 포함해 해마다 굵직한 다수 대회에서 입상한 이력이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트레일러너로서 이름이 더 알려지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종목을 시작한 건 클라이밍을 더 잘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산을 달리면 체중이 더 많이 빠질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트레일러닝을 통한 다이어트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년째 트레일러닝을 이어가는 이유는 앞서 김의철 님께서 언급한 것과 상당히 흡사합니다. 다양한 굴곡의, 험난한 산길을 달리면서 자연과 하나가 되는 듯한 순간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산과의 교감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체력이 향상되는 것을 느낍니다.
이러한 매력이 저를 산으로 향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트레일러닝에 단점이 딱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산에서 걷는 게 지루해진다는 거죠. (라고 말하며 그는 크게 웃었다는 후문) 제 자신의 목표는 앞으로 약 80세까지, 부상 없이 등반과 달리기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Live, Climb, Run and Repeat. 이게 저의 신조입니다.
오래 전부터 여러 차례 고산을 등반하기도 했습니다. 올해 2024년에 열린 산악스키 대회에서 다수 입상하기도 했어요. 트레일런 대회는 말할 것도 없죠. 이처럼 나열하니 제 고향이 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연에서 이룬 여러 경험 중 시작이 비교적 뒤늦은 종목은 트레일러닝입니다. 그래서 이 종목은 본인 스스로 헌신할수록 더 큰 성취감을 얻을 수 있다고 소개하고 싶습니다.
산을 달리면 대자연의 품 속에 안긴 것처럼 무언가 포근한 기분이 전해져 옵니다. 그런데 (의아할 수도 있지만) 산을 달리며 힘들다는 생각이 떠오른 적은 없던 것 같아요. 일상에서 즐겨온 산악스키, 그리고 직업 상 산을 반복적으로 오르내리는 게 (정신과 육체적으로) 익숙해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물론 저도 사람이니까 힘든 순간들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 속에 인상적이지 않은 이유는, 산길을 달렸던 그 순간들을 온전히 즐겼기 때문 아닐까요? 요즘 저는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전력을 다해 참가자들과 경쟁하는 그 순간을 즐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형성되는 타 선수와의 유대감이 저를 계속 달리게 만드는 원동력이 같습니다.
블랙다이아몬드 북한산성점을 출발해 원효봉을 거쳐 출발지로 되돌아오는 길. 어쩌면 우리에게 너무 익숙했기 때문에 스쳐 지나가게 두었을지도 모르는 장소를 소개합니다.
북한산에는 조선 숙종31년(1711년)에 완성한 북한산성이 있습니다. 옛 역사서에 따르면 성벽의 길이는 약 12키로미터에 달하고 성문은 총 14개가 있었다고 하니 그 스케일이 어마어마합니다. 그런데 여러 성문 중 하나가 바로 대서문입니다. 트레일러너 3인방이 일상에서 달리는 길은 대서문을 따라 이어집니다. 그리고 원효봉에 오르기 전, 가파른 오르막 정상에 위치한 작은 성문이 바로 북문입니다. 이 문 역시 대서문이 만들어졌을 때의 것으로 추정됩니다.
해발 505m로 북한산을 이루는 수많은 봉우리 중 낮은 편에 속합니다. 하지만 정상에서 보는 경관은 북한산 여러 봉우리 중에서도 단연 으뜸입니다.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이 봉우리에서 수련을 했다는 데서 원효봉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화룡 사도북 밤골
이 명칭은 코스를 설계한 구교정 선수가 스트라바(Strava) 어플리케이션에 코스를 저장하며 남긴 타이틀입니다. 사패산, 도봉산, 북한산을 거치며 이동거리 약 25킬로미터, 상승고도 약 2,200미터를 자랑합니다. 한편 구 선수는 지난 여름 북한산 백운대가 통제된 시기에 이를 피하면서도 주요 3개 산을 관통하며 훈련을 소화하기 위해 고안했다고 밝혔습니다.
위 코스명을 클릭하면 스트라바로 연결되며 ‘화룡 사도북 밤골‘ 코스 정보를 열람하여 활용할 수 있습니다.
산길을 달리는데 아직 망설이는 분들께 꼭 전하고 싶다는 한 말씀을 아래에 기록했습니다.
“지역 커뮤니티의 일원이 될 수 있고 이들과 함께 트레일 러닝 이벤트에 참가해 또 다른 러너들과 연결될 기회가 있습니다. 여기에 더하여, 산길을 달리다가 눈에 띄는 것이 있다면 멈추세요. 사진을 찍거나 머리 속에 그림을 그려서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재미를 더하는 방법입니다” – 김의철
“당신의 모험이 어느 환경에서 펼쳐지고 어떤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지 대비해야 합니다. 약 두 시간 이상 비바람 속에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집밖을 나설 때처럼, 아주 건강하고 온전히 귀가하는 것도 하루의 중요한 목표입니다” – 장홍선
“산책로를 벗어나 달리게 되면 가파른 경사면에 침식을 일으키고 자연 식물을 파괴할 수 있는데 이를 일컬어 ‘사회적인 길’이라고 말합니다. 자연을 위해 트레일이 아닌 구간을 달리는 것은 지양해주시길 바랍니다” – 구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