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의 어느 날, 댄과 자닌이 탄 폭스바겐 승합차는 인디언 크릭의 슈퍼크랙 주차장에서 충돌사고를 내고 멈춰 서게 됩니다. 엔진은 고장이 나 괴음을 내고 있었지만 바퀴 달린 집이나 다름없던 이 부부의 승합차 안에는 견인 차량이 올 때까지 버틸 수 있는 충분한 음식과 물이 구비되어 있었죠. 그렇게 그들은 흩날리는 싸락눈 속에 견인을 기다리며 카메라 한 대만을 챙겨 트레일 러닝을 나섭니다. 몇 달 후 그날 그들이 찍은 사진은 파타고니아 카탈로그 전면에 실리며 고장 난 차량의 수리 비용을 벌어 줬을 뿐 아니라, 트레일 러닝 포토그래퍼라는 커리어의 시작을 알리게 됩니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현재, 이들 부부는 스위스 인터라켄에 보금자리를 마련해 지금까지도 예전과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승합차 유목민의 삶을 유지한채 알프스, 시에라, 히말라야 산맥의 트레일을 달리고 있죠. 사진 작가이면서 동시에 선수인 댄과 자닌은 트레일 러닝에 대한 심도 깊은 이해와 뛰어난 실력을 겸비한 트레일 러너입니다. 이들 부부가 찍은 사진은 전세계 수많은 캠페인, 잡지, 기사, 그리고 아웃도어 산업을 이끄는 여러 브랜드의 상업 및 광고에 사용되고 있죠.

2015년 댄과 자닌은 ALPSinsight을 오픈하는데, 알프스 산악 스포츠인들의 삶과 이야기를 사진을 통해 전달하고 그들의 팁을 공유하는 웹사이트인 ALPSinsight는 자신들이 찍은 사진을 공유할 수 있는 훌륭한 창구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클라이밍, 하이킹, 스키, 사이클링, 그리고 트레일 러닝과 관련된 여러 자료들을 온라인에 배포함으로써 산악 커뮤니티에 질 높은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2016년에는 마찬가지로 선수이자 사진작가이고 글 작가이자 디자이너면서 동시에 모델인 킴 스트롬이 팀에 합류하게 되며 다채로움을 더하게 되는데, 이후 그녀의 도움으로 알프스 트레일 및 산악 러닝 온라인 가이드북인 Elevation: The Alps Trail & Peak Running Resource을 출간하고 이어서 Run the Alps Switzerland 가이드북까지 차례로 발매합니다. 이를 통해 이들은 명실상부 알프스 트레일 러닝 전문가로 이름을 알리게 되죠.

다음으로 러너들을 위한 그랜드 투어 루트인 Via Valais를 성공적으로 개척하고 정립하게 됩니다. 아이디어의 시작은 러너들에게 그랜드 투어의 개념이 없다는 것이었는데, 하이커들과 스키어들만 해도 Tour du Mont Blanc (TMB)이나 샤모니와 체르마트를 연결하는 Haute Routes 같은 거대한 대륙 투어 루트가 있었기 때문이죠. 먼저 러너들을 위한 새로운 루트를 만들기 위해 종착지는 Haute Route와 동일하게 체르마트로, 출발지는 스위스 발레주 지역의 유명한 트레일 루트들과 접근성이 높은 베르비에 지역으로 결정됩니다. 또 한 가지 고려해야 했던 것은 Haute Routes와 루트가 겹쳐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는데, Via Valais가 주변에 유명한 트레일 루트들과 닿아 있으면서도 그 자체로 독자적인 루트이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2018년, 무려 네 번에 걸친 탐사를 통해 러너들이 9일 동안 달릴 수 있는 그랜드 트레일 루트를 성공적으로 정립하게 됩니다.

Via Valais의 성공을 발판 삼아 이들은 이내 스위스 동부의 그라우뷘덴주에서 조금 더 초급자를 위한 루트를 만들기로 합니다. 그렇게 새로운 경로를 찾고 이어 나가기를 반복한 결과 2021년에 Via Grischuna라는 루트가 탄생하게 되는데, 다보스 클로스터(Davos-Klosters)에서 시작해 장크트모리츠(St. Moritz)까지 이어지는 Via Grischuna는 출발지와 종착지 모두 스위스에서 유명한 산악 도시일 뿐 아니라 중간에 수 킬로미터에 달하는 수많은 싱글 트랙이 함께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루트입니다.

위 영상에서 이들이 실제 현장에서 함께 작업하는 모습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다른 산악인들의 가슴을 뛰게 할 새롭고 독창적인 루트를 만드는 이들의 창의적인 작업은 때론 고되지만 보람차다고 하는데요.

이번 영상이 공개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이들은 곧 발매 예정인 Sierra Trail Runs: A Guide to the Eastside 가이드북의 완성을 위해 시에라 어딘가에 승합차를 주차시켜 놓고 타코를 먹으며 달리고 있다고 합니다.